세미파이어란 무엇일까? 돈보다 중요한 ‘일의 선택권’과 마음의 자유

세미파이어란 무엇일까? 돈보다 중요한 ‘일의 선택권’과 마음의 자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만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될까?'

'이 일을 계속 이렇게 해야 하나?'

'조금 덜 벌더라도 스트레스가 적은 일을 하면 안 될까?'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일을 하는 것이 싫어서라기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업무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감당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쉽게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월급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생활비도 필요하고, 가족의 생활도 책임져야 하고, 앞으로의 노후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다녀야지.'

그런데 최근 저는 세미파이어(Semi-FIRE)​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미파이어는 단순히 '반쯤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돈을 통해 일의 선택권을 조금씩 되찾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emi-fire



세미파이어란 무엇일까요?

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딴 말입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조기에 은퇴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쉽게 말하면 충분한 자산을 만들어 더 이상 생계를 위해 반드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완전히 일을 그만두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연봉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야근이 적었으면 좋겠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저녁을 보내고 싶다.'

'책임이 너무 큰 자리보다는 조금 편안한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과 연결되는 개념이 세미파이어입니다. 세미파이어는 완전한 은퇴보다는 근로소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일의 강도나 시간을 조절하는 삶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미파이어의 핵심은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미파이어의 핵심은 '일의 선택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업무가 너무 힘들어도, 출퇴근이 너무 길어도, 야근이 많아도, 쉽게 그만둘 수 없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월급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직장에 대한 선택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월급 때문에 다녀야 하는' 직장인들도 많습니다.

월급이 없다면

그런데 어느 정도 자산이 쌓이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생활비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금융자산이 있고, 당장 몇 개월 또는 그 이상의 소득 공백을 버틸 수 있는 현금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회사가 너무 힘들다면 이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연봉이 조금 낮더라도 출퇴근이 편한 회사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야근이 적은 직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책임이 적은 직무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잠시 쉬면서 다음 일을 찾는 선택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일의 선택권입니다.



일의 선택권은 생각보다 큰 자유를 만들어줍니다

예를 들어 연봉 5,000만 원을 받는 직장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길고 업무 스트레스도 상당합니다.

반면 연봉 3,000만 원 정도를 받지만 집과 가까우며 정시퇴근이 가능한 직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전혀 없다면 두 번째 직장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봉이 2,000만 원이나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산이 있고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봉 2,000만 원을 더 받는 대신 지금의 생활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와 '연봉을 조금 포기하고 저녁과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것인가?' 사이에서 고민/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면, 연봉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회사 대출'이 작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세미파이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서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출 원금과 이자가 매달 급여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때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월급이 끊기는 문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빌린 돈을 먼저 상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어도 현실적으로는 '대출부터 다 갚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대출을 다 갚은 날은, 제 수중에 큰 돈이 남은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월급이 갑자기 크게 오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회사를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있겠구나.'

물론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는 상태에서, 필요하다면 그만둘 수도 있는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경제적 여유는 '그만두기 위한 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돈을 모으는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나중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미파이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서 돈의 역할을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단순히 미래에 소비하기 위한 자원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권을 만들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충분한 비상자금이 있다면 갑작스러운 퇴사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대출 부담이 없다면 직장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조건이 하나 줄어듭니다. 금융자산이 어느 정도 있다면 연봉이 조금 낮은 직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무조건 더 좋은 차를 사고 더 큰 집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싫은 것을 참아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 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세미파이어는 '퇴사'보다 '선택권'에 가깝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미파이어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상태에 가깝습니다.

지금 직장이 힘들다면, 지금 회사를 떠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연봉이 조금 낮아져도 다른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

출퇴근이 너무 길다면 가까운 직장을 찾을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면 조금 덜 힘든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잠시 쉬어야 한다면 몇 개월 정도 쉬면서 다음 일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직장생활을 바라보는 마음 자체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출퇴근 시간도 '일의 선택권'의 일부입니다

현재 저는 송도에서 광교까지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합니다.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거의 끝나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 생긴다면 꼭 지금과 같은 조건의 직장을 선택해야 할 이유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집과 가까운 직장을 선택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늦게 출근하는 직장을 선택할 수도 있고, 퇴근이 빠른 직장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연봉만 놓고 보면 현재보다 안 좋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매일 한두 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시간 역시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도 경제적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 더 많은 책임과 업무를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업무에 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야근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연봉은 더 낮지만, 업무 강도가 낮고 정시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라면,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퇴근 후 가족과 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을 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은 직장에서 받는 월급명세서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삶에서는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미파이어는 '덜 일하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미파이어를 단순히 '일을 적게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부족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상태가 아니라면 모든 일을 마음대로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이전에는 '이 직장을 그만두면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했다면, 경제적 여유가 생긴 후에는 '이 직장이 힘들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지 뭐.'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결국 세미파이어는 '마음의 자유'와도 연결됩니다

제가 세미파이어를 생각하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경제적 자유라고 하면 보통 큰 자산을 먼저 떠올립니다. 수억 원, 수십억 원의 자산을 만들어야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출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자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몇 개월치 생활비가 마련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습니다. 이직할 때 연봉을 조금 포기할 수 있는 정도의 자산이 있어도 선택권이 생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만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느냐​일지도 모릅니다.



세미파이어를 위해 꼭 회사를 그만둘 필요는 없습니다

세미파이어를 준비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둘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 소득이 안정적이라면 그 기간을 활용해서 선택권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1. 부채를 줄입니다.

매달 반드시 나가야 하는 돈을 줄이면 직장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집니다.

2. 비상자금을 마련합니다.

갑작스러운 퇴사나 이직 기간에 사용할 수 있는 생활비를 준비합니다.

3. 금융자산을 조금씩 늘립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기 위한 돈이 아니라 미래의 선택권을 위한 자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4. 원하는 근무조건을 생각해 봅니다.

연봉, 출퇴근 거리, 근무시간, 책임, 업무 강도 가운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5. 이직 가능성을 계속 열어둡니다.

지금 회사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부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세미파이어의 최종 목적은 '일하지 않는 삶'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이 세미파이어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삶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은퇴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일을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일을 하되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일을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세미파이어는 그 가운데 하나의 선택지입니다.

일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내 삶을 결정하는 비중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직장' 에서 '내가 선택해서 다니는 직장' 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입니다.

일의 선택권



지금 당장 그만두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 역시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둘 계획은 없습니다. 생활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생각이 있습니다.

무조건 지금의 일을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지금은 다니지만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조건의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다릅니다.

회사 대출을 모두 갚고 나서 느꼈던 작은 자유처럼, 앞으로도 하나씩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 자산을 만들어가다 보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조금씩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힘든 날이 왔을 때 '에잇, 까짓것 그만두고 다른 곳 찾아보지 뭐.'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회사를 그만둘 필요가 없는 사람이 오히려 회사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미파이어는 어쩌면 바로 그런 상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일을 하지 않는 것만이 경제적 자유는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고, 싫은 일을 반드시 참지 않아도 되고, 출퇴근 시간이 짧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저에게 세미파이어란 결국 돈을 통해 '일의 선택권'과 '마음의 자유'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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